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는 이자춘 입니다. 본래 함경도 쌍성 지방에서 세력을 떨치며 원나라의 천호로 있다가 고려 공민왕의 반원 정책의 일원으로 고려에서 소윤부라는 벼슬을 받고 쌍성총관부를 함락시켜 함북 이주의 땅을 고려가 회복할 수 있는데 공을 세웁니다.


초기의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이자춘 역시 고려보다는 원나라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함경도 쌍성지방에서 세력을 형성한 이자춘은 최한기의 딸과 결훈 후 아들 이성계를 낳았습니다. 이자춘의 몽고식 이름은 오로사불화 입니다. 이자춘은 형인 이자홍이 죽자 어린 조카 이천계를 대신해 원나라로 부터 천호 라는 임시벼슬을 받습니다.


이자춘태조 이성계


관직 천호의 의미

천호는 고려 후기 몽고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관직 가운데 하나 입니다. 명칭은 만호, 백호와 더불어 관령 하는 민호의 수에 다라 붙여졌습니다. 이런 관직 체계는 원나라에서 발달후, 차후 고려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특히 천호는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영진체계와 진관체계로 바뀌면서 수군에서는 각 도의 요충지에 배치되어 주로 조운선을 담당하였으며, 육군에서는 북방내륙의 제진에 배치되어 지방 수령이나 만호 밑에서 그 진을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공민왕고려 공민왕


공민왕 4년 원나라가 대내외적으로 정치적 불안감이 조성되자 개성에 있는 고려 조정에 내알하여 이자춘은 고려에 귀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1356년 밀직부사 유인우가 쌍성총관부를 공격할 때 이를 도와 소윤부라는 벼슬을 하사받게 됩니다. 이자춘은 쌍성총관부 함락의 공을 인정받아 대중대부사복경이 되어 고려 조정으로부터 저택을 하사받고 함경도를 벗어나 개경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쌍성총관부는 고려 후기 몽고가 고려의 함경남도 영흥 이북 지역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부의 이름 중 하나 입니다. 화주에 치소가 있었으며, 등주, 장주, 예주, 고주, 문주, 의주와 선턱진, 원흥진, 영인진, 요덕진, 정변진 등을 관찰 했습니다.


쌍성총관부쌍성총관부 원나라 세력 축출 방향


쌍성총관부가 생기게 된 이유는 고려 정부의 통치 세력이 함경도 까지 실제 효력을 크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고려의 유이민과 여진족이 함께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조소생과 천호 탁도경이 항거를 했지만 조휘의 손자인 조돈과 함경도 지역에 토착해 있던 이자춘이 고려에 귀의함으로써 조소생은 이판령을 넘어 도망 후 결국 폐지가 됩니다.


쌍성총관부가 폐지되고 이자춘은 동북면병마사에 임명이 되니 자연스럽게 세력을 확대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훗날 그의 아들인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세우는데 세력을 다지는 밑거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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